일본 유학 계획이 무산되고, 나는 성우의 길을 걷기로 했다.
예전부터 오타쿠로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직업도 그쪽과 관련된 일에 먼저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작곡가 등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일에 관심이 생겼다. 사실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기 보다도, 아는 게 그쪽과 관련된 일들 밖에 없다 보니 다른 선택지가 떠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림예고 졸업생인데, 학교 수업 중 연기 수업도 있었고, 고등학생 시절에는 성우 학원도 잠깐이나마 다닌 경험이 있다 보니, 성우 쪽으로 눈이 더 쏠렸다. 마침 내가 살던 동네에 성우 학원도 있었고, 잘 됐다 싶어 바로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22살, 막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성우지망생이 되었다. 여기에 대해 더 얘기하고 싶지만, 메인은 이 이야기가 아니기에 아쉽지만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겠다.
22살부터 26살까지 성우지망생 생활을 했다. 말이 성우지망생이지 거의 백수나 다름 없었다. 간혹 성우 일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시원치 않았다. 20대 초반 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20대 중반에 들어서니 서서히 내 미래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나운서처럼 성우도 시험을 보는데, 그게 바늘 구멍보다 더 좁단다. 그래서 나는, 같은 시기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던 동생과 같이 성우 지망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포기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러고나니 내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깜깜해도 너무 깜깜했다. 나는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전문성이라고는 이때까지 예체능계에서 조금씩 일 한게 전부다. 그것마저 전문성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경험치였다.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내가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우울감에 휩싸옇고, 감정은 저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우울감에 빠져있으니 공부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내 남은 20대를 공부에 다 투자한다면, 30대부터는 새로운 길이 다시 열릴거야.
근데 무슨 공부를 하지? 그래, 일본으로 유학을 가자. 가면 뭐라도 내가 할 수 있는게 있을 거야.”
이 생각 하나로 나는 다시 한 번 일본 유학에 불을 지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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