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한 번 일본 유학에 도전했다.
아는 분들한테 수소문해서 일본 유학에 관해서는 최고라는 학원에 상담 전화를 걸었다. 어떤 선생님이 받으셨는데 나보고 빨리 와야 한단다. 당시 3월이었는데, 3월도 늦은거라며, 빨리 와서 대면 상담을 받으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선생님은 진심으로 말씀하신거겠지만, 당시의 나는 “이것도 학원의 상술의 일종인가?”라고 의심했었다.
다음 날, 나는 학원에 직접 찾아가 대면 상담과 간단한 테스트를 받았다. 대면 상담 중 나는 “1년 안에 와세다를 가고 싶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 유학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건방지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진심이었다. 어떤한 시련이 있더라도 입 꾹 다물고 끝까지 버텨낼 것이고, 그렇게 해서 정말 좋은 일본 대학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 시련을 달게 받게노라며. 그런데 내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은, 일본 유학에도 영어 성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일본어는 자신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영어 보기를 돌 보듯이 봐 온 나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도 처음 들어보는 토플이라는 시험을 처야한단다. 그것도 120점 만점 중 90점 이상. 나는 호기롭게 “알겠습니다. 점수 가져오겠습니다!” 라고 자신있게 얘기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지금도 토플 성적이 없다. 대체 일본 유학에 토플이 왜 필요한 것일까.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고 처음 3개월은 행복했다. EJU라는 일본 유학 시험이 있는데 학생들은 이 성적으로 일본 대학에 지원한다. 나는 처음 세 달간은 본격적인 EJU수업에는 들어가지 않고, 내가 이때까지 해오던 JLPT을 위주로 수업을 받았다. 다른 과목들은 개념반에서 아주 기초적인 내용에 대해서만 공부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본격적인 수업을 받기 시작했을 때, 나는 절망했다. 개념반과 실전반의 격차가 너무나 컸던 것이다. 나는 학원 자체 시험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였다. 그나마 일본어는 조금 선방했지만, 사회과목과 수학, 영어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지망 학교의 폭을 줄여가며, 한 과목 한 과목 포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학을 포기하고, 토플을 포기하고, 마침내 종합과목을 포기했다.
일본 대학을 준비하다보면 알겠지만, 은근히 일본어 성적과 영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학교가 꽤 있다. 물론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다른 과목이 필수이지만, 당시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법대를 노리고 있었고, 내가 가고자 한 대학의 법학과는 일본어와 영어 성적만 받았었기 때문이다. 일본 명문 사립대 중 가장 편사치가 높은 학과였다. 그것을 위안 삼아 나는 일어와 영어만 죽어라 공부했다.
그 해의 마지막 EJU시험이 다가올 무렵, 나는 일본어에 매진하고 있었다. 토플을 대신하여 토익 성적도 795점을 가지고 있었다. 학원에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얘기하였고, 그 말에 기대어 나는 일본어에 온 집중을 쏟았다.
11월, EJU시험 당일. 시험이 끝나고, 고사장을 나오는 내 마음은 심히 착잡했다. 가장 자신있던 일본어에서 크게 실패하고 말았다. 보통 시험을 치고 한 달 뒤에 결과가 나오는데, 그때 확인한 내 일본어 점수는 330점이었다. 일본어는 350점부터가 좋은 점수라고 평가 받는다. 그러니까 내 점수는 낮은 점수에 속했다. 특히 나는 일본어만 시험 봤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기 더욱 힘들어졌다. 결국 지망하던 대학에는 떨어지게 되었다. 나는 또 우울해지고,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가족들과도 싸우고, 결국 나는 일본으로 2주간 도망을 갔다.
나에게는 일본인 여자친구가 있는데, 여자친구 집에서 2주동안 신세지며 지냈다. 지내는 동안 여자친구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왜 일본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여자친구와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금 되새겼다. 생각 정리가 끝난 후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다시 한 번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미소 섞인 목소리로 위로해주시며 그러라하셨다. 참 희한하게도 그 한 마디 말에, 내 마음이 전부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없던 용기도 생겨났다. 나는 여자친구에게 “조금만 기다려. 곧 돌아올게.” 라는 말을 남기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쉽게도 여건 상, 더 이상 학원을 다닐 수 없게 되어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급하게 이사한다고 학원에 미처 말하지 못해 전화상으로 말씀드렸다.
“죄송합니다. 이제 더 이상 학원을 못 다닐 것 같아 연락드렸습니다.”
나는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그랬더니,
“괜찮으니까 계속 연락해! 현장 수업은 못 들어도 계속 서포트 해줄 테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해!”
그 말이 너무 감사해 어쩔 줄 몰랐다. 이렇게 말씀해주신 선생님이 내가 처음 학원에 전화했을 때 상담해준 그 선생님이셨다.
이렇게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분들과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마지막 1년을 불태우겠노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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